세 온 서른 다섯. 해왕성 이야기

해왕성이 15일 충을 맞이했다.

세월은 흘러 흘러, 지구는 돌고 돌아, 또 다른 이웃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해왕성 하면, 역시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월간 과학>에서 보았던 그 새파란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략 중고등학생 시절을 청춘이라 한다면, 내게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청춘의 추억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구나, 하는 또다른 세계의 존재에 대한 재확인이라고 할까?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절, 물리학적인 개념으로 따지면 평행 우주라 할 수 있을 다중 세계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력이 한창 무르익던 시절, 멀지 않은 곳에 전혀 다른, 아름답기 그지없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에 감동을 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중학생 때는 천문학자를 꿈꾸다가 고등학생 시절 작가로 꿈을 바꾼 터여서, 이런 천문학적인 아름다움은 언제라도 나의 감수성을 건드렸다. 이제 와서 보면 천문학자도 작가도 되지 못했지만, 인문과 과학에 동시에 양다리를 걸치며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나의 성향은 학창 시절의 이 두 가지 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왕성은 19세기 당대 과학의 성과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천왕성의 움직임을 간섭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체가 분명히 저 곳에 있으리라는 예측, 그 예측이 합리적인 오차 범위 내에서 적중했음이 해왕성의 발견으로 입증된 과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짜릿하기만 하다. 천체를 운행시키는 신의 손길 같은 건 없으며, 모든 천체들은 오로지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미치며 움직인다는 확고한 사실. 종교는 점점 힘을 잃어만 가고 있었다. 수학적인 계산만으로 우주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마저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짙푸른 바다색을 생각하면 바다의 신 해왕성은 참으로 적절한 작명이지만, 생각해 보면 좀 얄궂기도 하다. 해왕성이 이렇게 짙푸른 색이라는 걸 19세기의 관측 수준으로 정확하게 알아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푸른 색 점으로는 보였을 테니까...

얄궂다고 한 건, 두 행성의 이름 관계 때문이다. 천왕성, 즉 우라누스는 해왕성, 즉 넵튠의 할아버지 뻘이다. 손자인 넵튠이 할아버지인 우라누스의 진로에 끊임없이 간섭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애썼으니, 말하자면 기성 세대에 반항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사실 직접적인 관계로 따져 보자면 아버지인 크로노스에 반항하는 넵튠의 모습이 더 재미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예지 능력이란 게 없는지라, 천왕성이 발견될 당시에는 또다른 행성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작명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천왕성의 발견은 그 자체가 원시 시대 이래 처음으로 새로 발견된 행성이라는 충격이 있었으니까.

가끔, 의심할 여지 없이 동일한 특성을 갖는 행성이 그 후로 여러 묶음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붙이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신화 속에서 신의 이름을 끌어올 수 있었겠지만, 아홉 번째로 발견된 명왕성이라는 이름은 어쩐지 그 작명에 완벽한 종지부를 찍은 감이 너무 강렬해서, 그 이후가 궁금해진다.

그런 딜레마는 나같은 범인들뿐만 아니라 IAU측에서도 느꼈던 것인지, 결국 이후 줄줄이 사탕처럼 발견된 외행성들에 비록 신의 이름을 붙이기는 했으되, 함께 묶기 보다는 명왕성과 함께 내치는 쪽을 선택했다. 명왕성은 사실 워낙 어둡고 외따로 떨어진 아웃사이더 같은 이미지이다 보니 함께 내쳐져도 무방하다는 이미지가 있긴 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그 내쳐짐을 슬퍼했었지...

새로 발견된 존재가 기존의 존재의 정체성을 흐트러뜨려서 기존의 세계관에 서서히 균열을 내는 사례는 숱하게 있어 왔다. 그런데 행성은 우리에게 워낙 특별한 존재들인지라, 이런 식으로 정체성이 재배열되는 건 우리에게 다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회를 준다. 태양계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는 건 흥미로운 일이지만, 예전의 구성원들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명왕성의 새로운 정의에 그토록 서운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세계관이 넓어지는 걸 즐기는 편이다. 잠깐 서운한 걸 뒤로 하고 나면 새로운 경지가 기다리고 있는 걸 좋아한다. 서운함이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추억으로 남아 가끔 떠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6년의 IAU의 결정은 좋든 나쁘든 사람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고, 그 소식을 접할 당시에 감수성 예민한, 해왕성의 사진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무렵의 내 또래였을, 수 많은 이들에게 그 기억이 어떤 의미로 와닿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세월이 좀 더 흐르기 전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해왕성에서 흘러나온 이런 저런 단상이었다...

by 다크초콜릿 | 2008/08/18 23:06 | 우주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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