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료를 검색하다가, 예전에 동경 135도 일본 표준 자오선을 따라 각지의 표지, 기념비 등을 찾아 일본 국내를 북에서 남까지 탐방한 한 일본인의 블로그를 보았던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보았다.
경도 15도 단위로 시차가 발생하니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 게 표준 자오선이지만, 역시나 덕후왕국 일본다운 집중력으로 일일이 찍어 올린 사진을 감상하다가, 문득 이 블로그 주인이 단순히 자오선을 따라다닌 게 아니라 천문학 덕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관측 경험기를 뒤져보다가, 8년 전 금성의 태양면 통과 당시의 기록을 읽게 되었다.
아마도 간사이 지역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흐린 날씨 때문에 관측에 실패한 후 1874년 12월 9일 프랑스 천문학자들이 방문하여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관측했다는 기념비를 세운 고베의 한 공원을 찾아간 사진과 여러가지 당시 자료를 올린,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는 기록이었다.
2004년 당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알지도 못한 채 흘려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올 6월 6일에 다시 관측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이번에 지나가면 앞으로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야 다시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만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140년 전 관측의 흔적을 접하게 되니, 정말로 기분이 묘했다. 인간 세상의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의 덧없음이랄까, 불과 140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세상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아직도 외국인의 존재가 낯설던 개항 직후의 일본으로 관측하러 오기 위해, 이 프랑스인들은 얼마나 먼 길을 여행했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와 비슷한 여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배를 갈아타고 또 갈아타며, 그렇게 힘겹게 도착했겠지. 관측 장비라고는 망원경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항공기를 타고 하루만에 대륙을 이동할 수 있고, 눈이 돌아갈 지경으로 첨단 장비가 많이 쏟아져 나온 지금과 비교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관측 장비조차도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관측을 수행해낸 기념으로 기념비까지 세울 정도였으니,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장비를 갖출 수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눈물겹기만 하다. 이것이 불과 140년 전의 이야기라니.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그 어떤 과정도 참아내는 천문학자들의 열정이겠지.
언젠가 고베를 여행하게 된다면 한번쯤 들러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아, 나가사키에도 이런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그 곳도 가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는 기나긴 주기의 천문현상을 기념하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세운 기념비는 묵묵히 얼마나 많은 인간사를 지켜 보았을까.
막 에도시대를 벗어날 무렵이던 일본은 그 후로 메이지 유신을 겪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뒤, 경제대국이 되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품에 도취되었다가 그 거품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이 모든 사건들을 다 지켜보았을 기념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인간사의 기간이 어느 천문현상의 한 주기에도 채 못 미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우주를 느끼게 된다. 덧없이 짧은 인간사란...
일본어가 가능한 분들을 위한 해당 블로그 링크.
여기.
그리고 여기는 해당 블로그 주인장이 참고한 블로그로, 고베 이외의 다른 지역의 관측 기념지도 소개하고 있다.
올 여름에는 꼭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관측하리라. 사실상 이번이 아니면 살아서는 볼 수 없으니까.
# by | 2012/01/31 23:55 | 우주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