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온 여든 셋. 개기월식 관측

완전중무장하고 나갔는데도 오들오들 떨면서 3시간 넘게 개기월식 관측을 마쳤다. 생각보다는 덜 추워 그나마 좀 버틸만 했다.

8시 48분 달이 지구 본그림자 진입 순간부터 12시 12분 본그림자에서 빠져 나올 때까지, 쌍안경으로 들여다 보다가 팔이 아프면 잠시 쉬고, 곱은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어 녹히기도 하고,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손난로를 챙겨 나올 걸 가끔 후회도 하면서, 그러나 관측할 때는 늘 그렇듯 전혀 지루하지 않게 관측을 즐겼다.

달은 대략 호주 대륙만한 직경이다. 저 멀리 호주 대륙이 떠 움직이는 모습을 구경한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고 재미있었다. 달에서 보이는 호주 대륙이 지구에서 보는 달만하다는 뜻이니까. 점점 본그림자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달을 보며, 늘 태양빛을 받아 우주 공간으로 무한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햇빛을 쬐면 그림자를 만들듯 당연한 사실인데도 참으로 신기했다. 그 그늘로 조금씩 움직여 어두워지는 달의 모습은 본 적 있는데도 여전히 낯설었다.

완전히 그림자 안에 들어온 붉은 달을 보고 있자니 옛 사람들이 불길하게 생각한 것도 뭐 당연한 일이었겠다 싶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적응 안 되는 빛깔이었다.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어떻게 저런 빛깔이 날 수 있을까, 신기했다.

개기월식이 끝나고 달에 밝은 영역이 생겨나는 순간, 달이 저렇게 밝았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명암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니 어두운 곳에 있다 빠져 나와서 더 밝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밤하늘을 지배하는 최강자다웠다. 도시의 현란한 조명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오히려 압도하는 그 눈부심.

사실은 너무 추워서 본그림자를 빠져 나올 무렵에는 그만 들어갈까 망설였다. 하지만 시시각각 모양이 바뀌며 점점 불어나는 달의 모습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완전히 보름달 모양을 회복하자마자 들어왔다. 어찌나 추운 데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지 다리 근육이 굳어 발걸음이 제대로 떼어지지 않았다. 나란 놈도 참...

매번 겪는 일이면서도 이렇다. 아무리 고달퍼도 끝을 보고야 만다. 근성으로 봐서는 진짜 어디 천문대에 근무하며 매일 밤하늘을 벗삼아야 할 인간인 것만 같은데, 뭐 듣자 하니 요즘 천문대 망원경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따뜻한 실내에서 원격으로 카메라를 조정해 가며 관측한다고 하니...

아무튼 고달펐지만 즐거웠던 개기월식 관측이었다. 언제 다시 관측할 수 있으려나...

by 다크초콜릿 | 2018/02/02 23:35 | 우주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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